방송작가 김종철의 성지로 떠나는 인물열전> 글보기
블레셋 군사들의 허둥지둥 도망가는 모습을 본 사울왕은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그동안 그렇게도 오랫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던 블레셋 군사들을 자기의 아들 요나단과 단지 몇 명의 특공대원들에 의해 살해되고 나머지 군사들도 도망가는 모습이라니...
요나단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은 벌써 몇km나 떨어진 에브라임 산지까지 진격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숲과 나무가 많은 산악지역이었다.
아무리 기세가 하늘을 찌를듯한 이스라엘 군사들이라고 할지라도 어젯밤 밤새 뜬눈으로 작전을 지켜 보고 있다가 빠른 속도로 도망가는 블레셋의 군사들을 뒤쫒아 오는 일이란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요나단 뿐만 아니라 그의 군사들은 모두 지쳐 있었다.
아직까지 조직적인 군사조직을 갖추지 못했던 요나단의 군사들에겐 병참부대가 뒤따르지를 못하고 그저 맨몸에 동물의 가죽으로 된 방패와 날카로운 나무창만 들고 험난한 산을 타고 있었던 터라 그들은 벌써 지칠대로 지쳐 있었던 것이다. 어젯밤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요나단과 그의 군사들은 풀썩 주저 앉았다.
‘이곳에서 잠시 쉬자. 군사들은 잠시 쉬면서 대열을 재정비하라’
군사들은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아무렇게나 땅에 내던졌다.
‘먹을 것이 없는가?’
‘네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 군사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무조건 진격만 하라고 하다니...’
바로 그때, 요나단의 팔뚝에 벌이 한 마리 앉았다.
순간 요나단은 중얼거렸다.
‘벌이 있다는 것은 분명 이곳 어딘가에 벌집이 있을 것이다. 우선 벌집을 찾아 꿀이라도 먹어 허기를 채우는 것이 어떤가? 군사들을 시켜서 벌집을 찾아 꿀을 퍼와 군사들에게 꿀을 먹이도록 하라’
그러자 군사들은 산속에 흩어져 여기저기서 벌집을 찾아왔고 그중에 가장 깨끗하고 맛있는 꿀을
요나단에게 가져왔다.
‘역시 하나님은 우리를 굶기시지는 않는군...’
요나단은 군사들과 함께 꿀을 허겁지겁 먹어댔다.
바로 그때였다. 숲속에서 누군가 뛰어오고 있었다.
‘요나단이시여 먹던 것을 멈추십시오.’
그 남자는 벌써 수십km를 단숨에 달려온 듯 숨이 턱까지 차올라 그 다음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넌 어디서 온 누구냐?’
‘저는 사울왕이 보낸 전령이옵니다.’
‘무슨 전령인데 먹던 것을 멈추라고 하는 건가?’
‘사울왕께서 블레셋 군사를 뒤쫒는 이스라엘 군사들은 절대로 밤이 될 때까지 아무런 움식을 먹지 말고 블레셋 군사를 쫒아가 모두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밤이 되기전에 적을 추격하는 것을 멈추고 어떤 음식이던지 먹는 자는 왕의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입에 꿀을 넣었던 몇 명의 군사들이 요나단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입밖으로 뱉어냈다.
요나단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전령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지금 군사들이 모두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인데도 아무것도 먹지 말고 어떻게 적들을 쫒아가 목을 벤단 말인가? 우린 지금 먹을 게 아무것도 없어. 이제 겨우 벌집을 몇 개 구해 꿀이라도 발라 먹어 힘을 내서 적을 추격해 더 많은 적을 따라 잡고 죽여야 할 것 아닌가?‘
‘사울왕의 명령입니다’
이들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군사들은 여전히 손에 꿀을 잔뜩 묻힌 채 입에 집어 넣지도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은 듯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뭣들 하는가? 어서 손에 들고 있는 꿀을 먹고 힘을 내지 못할까?’
다급해진 전령은 다시한번 얘기를 했다.
‘요나단 왕자시여 이건 당신의 아버지 사울왕의 명령입니다.’
‘아버지의 명령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야. 당장 여기 와서 이 군사들의 지친 모습을 보라고 해! 어서 먹지 못할까?‘
요나단이 이렇게까지 큰 소리로 군사들을 질책한 것을 그들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꿀을 입에 넣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요나단은 칼을 꺼내 병사들의 목에 갖다댔다.
‘우린 지금 이것마저 먹지 않으면 한발자욱도 앞으로 갈 수가 없어. 아니 돌아갈 힘도 없어. 여기서 그대로 지쳐 쓰러져 적의 칼을 받을텐가? 어서 먹어, 어서 먹고 힘을 내란 말야.’
그래도 군사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먼저 먹지.’
요나단은 그 자리에서 보란 듯이 꿀을 밀납채 우걱 우걱 씹어 먹었다.
‘자 이래도 안 먹을 건가? 내가 왕의 명령을 어겼다. 네들은 먹지 않고 왕의 명령을 따를텐가?’
그러자 군사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가 누군가 요나단과 함께 꿀을 먹자 그제서야 허겁지겁 먹어댔다.
‘자, 다시 진격한다. 어서 가서 블레셋 군사들을 모두 죽이자.’
어느 정도 허기를 달랜 요나단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은 기력을 되찾고 도망가던 블레셋 군사들을 쫒아가 죽이며 그들이 갖고 있던 창과 갑옷 방패 등의 많은 전리품을 노획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또한 블레셋 마을의 많은 가축을 사로 잡은 후에 죽여서 고기를 피와 함께 먹은 것이다
이제 요나단과 그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사들은 누가 보아도 완벽한 승리자의 모습들이었다.
한편 그 시간, 사울은 제사장 아히둡을 불러 적의 진영을 습격해 적을 살육해도 좋은지 하나님께 여쭈어 보라고 말했다.
사울은 비록 자신이 엘리야 선지자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직접 제사를 드림으로써 사무엘의 질책을 받긴 했지만 이제 어느정도 상황이 정리가 된 상태에선 그 다음의 전략에 대해서 만큼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사울왕은 처음부터 사무엘의 뜻을 거스릴 의도는 전혀 없었다.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는 만큼 기다렸으며 이스라엘 군사들이 겁을 먹고 도망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취한 행동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제사를 끝마친 제사장 아히둡의 얼굴은 어두워 있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던가?’
‘아무런 대답이 없으십니다.’
‘그럴 리가 있나? 우리가 적의 진영을 습격해도 좋은지 안 좋은지 뭐라고 대답을 해주셔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게 말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미리 아시고 허락해 주시던 하나님께서 이번 우리의 물음에 대답하기를 꺼려 하시는데는 필히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시 우리가 모르는 죄를 누군가 범한 것이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리가 없잖은가?‘
사울의 그런 생각은 진심이었다.
누가 뭐래도 사울은 하나님의 선택으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되었으며 그래서 더욱 더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사울에게 하나님의 무응답은 분명 두려울 수 밖에 없는 사안이었던 것이다.
‘우리 중에 범죄한 자가 있다구요?’
우린 그동안 왕과 함께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잖습니까? 왕이 범죄치 않았다면 우리 역시 범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 그건 나도 알아. 그렇다면 말야...’
순간 곁에 있던 사람들이 사울왕의 입만 바라보았다.
‘우리 중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내 아들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이란 말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요나단 왕자께서 범죄하다니요.’
‘설사 내 아들이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나는 용서치 않을 것이다. 내아들이 어디에 있던지 당장 내게로 오라고 하라.’
한참 뒤, 전장에 나가 있던 요나단이 사울왕 앞에 불려 왔다.
‘내가 제비뽑기를 해서 왕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제비뽑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왕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때로 제비뽑기를 통해 우리의 길을 안내하시고 판단할 수 있게 하신다.
우리 중에 분명 누군가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하니 지금부터 제비뽑기로 그 죄인을 가려 내자.
그리고 그 죄인은... 내가 분명코 말하건데 죄의 값을 치루리라 ‘
왕과 그 앞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분위기가 무거워 졌다.
도대체 누가 이들 중에 죄를 지었단 말인가? 그리고 제비뽑기에선 누가 선택될 것인가?
드디어 제비뽑기가 이어졌다.
제비를 뽑고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순간마다 여기 저기서 안도의 탄성이 들려나왔다.
그것은 나는 살았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요나단의 제비가 뽑힌 것이었다.
순간 사울과 요나단 그리고 그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석고처럼 굳어 버렸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나는 살았다고 좋아했던 사람들은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자기들의 감정을 어떻게 감춰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당황하기 까지 했었다.
‘아들아, 난 그동안 너를 너무도 자랑스러워 했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이냐?
네가 대체 무슨 죄를 범했단 말이냐?‘
그러자 요나단이 고개를 떨구며 대답을 했다.
‘아버님, 저는 아버님이 맹세와 저주를 선포하신 것을 알면서도 그만 적을 추격하다가 꿀을 조금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울은 눈 하나도 깜짝하지 않고 요나단을 바라보았다.
‘진정 네가 나의 명령을 전달 받고도 듣지 않았단 말이냐?’
요나단이 다시 아버지 사울왕에게 말을 이었다.
‘아버님, 저는 제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걸 복걸하지 않겠습니다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둔 이 마당에 맹세를 지키시려는 아버님의 경건함 때문에 죽어야 한다면 죽음은 오히려 제게 기쁜 것이 제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을 진멸하고 승리한 것을 보고 눈을 감는 것이 제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네가 지금 그런 소리를 한다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풀릴 것 같느냐?’
‘아버님,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저를 따르는 많은 군사들이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지쳐 쓰러지는데 어찌 먹을 것을 눈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게 한단 말입니까?’
그러자 사울은 냅다 소리를 질렀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지 않았어.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지 않는데 무슨 변명을 한단 말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어떻게 나의 명령을 알면서도 거역을 한단 말이냐?’
‘아버지께서도 사무엘 선지자가 도착하기 전에 제사를 먼저 드리시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때도 역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구요. 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뭐라구? 지금 네가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느냐?’
사울은 너무도 흥분해서 자기의 옆구리에 차고 있던 칼을 높이 빼들었다.
‘네 이놈, 나는 이나라의 왕이야. 아들이 아버지 왕의 명령을 듣지 않는데 누가 왕의 명령에 따른단 말이냐? 난 분명히 백성들 앞에 맹세를 했다. 비록 내 아들이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용서치 않겠다고... 목을 빼라’
분위기는 말할 수 없이 험악해졌다.
사울은 여전히 살기가 등등했고 요나단은 그저 고개를 빼내민 채 모든 것을 단념한 것 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사울은 금방이라도 칼을 내리칠 것 같은 기세였다.
바로 그때였다.
‘왕이시여,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무척 외람되기는 하지만 꼭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요나단이 누굽니까?
사울왕께서 가장 아끼는 아들이며 지금 우리가 이렇게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한 주인공이 아닙니까? 비록 요나단 왕자께서 왕의 명령을 어긴 것은 분명 잘못이긴 하지만 그래도 왕자께서 이뤄 내신 승리는 우리 민족에게 너무나 값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난 수대에 걸쳐 블레셋 군사들에게 고통을 당했으며 제 가족과 친구들이 블레셋 군사들에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블레셋은 우리 민족의 끊임없는 원수 였고 그 원수들을 보기좋게 물리친 자가 바로 요나단 왕자였습니다. 요나단 왕자의 승리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한 엄청난 의미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단한번의 잘못을 용서치 못하시고 요나단을 처형하신다면 우리는 또다시 실의와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왕이시여, 지금 왕의 분노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한번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요나단 왕자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누군가 용기를 갖고 이렇게 간곡히 얘기를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말이 더욱 사울왕의 분노를 사게 한 것일까? 사울왕은 그의 말을 듣는 동안에도 더욱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차분히 말을 꺼냈다.
‘그럼,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신감과 미래를 선사한 것이 요나단이란 말인가? 내가 아니고?’
‘왕이시여 그런 말씀이 아니라...’
다시한번 사울왕이 소리를 질렀다. 그의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산계곡을 타고 메아리 칠 정도였따.
‘당신 말의 뜻이 그런게 아냐?’
사울의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 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왕이시여...’
또 다시 누군가 그 침묵을 어렵게 깨뜨렸다.
‘제발 노여움을 가라앉히소서. 문제는 왕의 명령을 거역한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는 것 아닙니까? 왕의 명령을 거역한 것은 왕께서만 용서해 주시면 되는 것이고 왕께서 하나님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제발 우리 앞에서 왕의 아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 주지 말아 주십시오. 저희는 이번 일로 왕의 명령이 얼마나 엄청난 무게인지를 충분히 알게 되었습니다. 제발 요나단 왕자를 살려 주십시오.
왕이시여. 이모든 신하들이 간곡히 부탁하옵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온 것일까?
그들은 어느새 모두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요나단의 목을 베기전에 네들의 목 부터 베어 줄까?’
‘왕이시여, 저희들 목을 베는 것은 두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뭐라고 하겠나이까? 이렇게 저희가 간곡히 부탁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저희들의 목을 베고 왕자의 목을 베는 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떤 백성들이 왕을 존경하고 왕의 말을 따르겠나이까? 왕께선 그것이 두렵지 않나이까?’
사울은 여전히 칼을 높이 든채 한동안 요나단을 내려다 보았다.
‘이젠 날 협박하는군...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서 말야’
사울의 목소리엔 벌써 힘이 빠져 있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팔을 내렸다.
이어서 그의 손아귀에 꼭 쥐어져 있었던 칼도 땅에 떨어뜨려 졌다.
‘요나단, 너는 이 백성들이 구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숙소로 돌아갔다.
그러나 사울이 속으로 자조섞인 웃음과 함께 중얼거리는 소리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죄를 지어도 저들은 저렇게 나를 감싸 줄 수 있을까? 내 편이 있단 말인가?’
그 순간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의 모습이 아니라 너무도 초라하고 쓸쓸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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